이질적인 단어가 붙어 있는 제목의 소설책을 발견했다.
현대인들에게는 긴 영업 시간 등으로 마트보다 더 편리해서 찾게 된다는 '편의점'.
비싸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제휴 할인이나 1+1 같은 행사를 잘 이용하면 오히려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은 '불편한 편의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제목에서부터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진 편의점이 불편하다는 것을 알리고 있는 이 소설은, 너무나도 어렵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는 책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읽은 뒤에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1.
청파동에서 Always 라는 이름의 편의점을 운영하는 염영숙 여사가 기차에서 지갑이 든 파우치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그녀의 파우치를 찾아준 것은 서울역에 사는 독고라는 이름을 가진 알콜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노숙인 남성. 그녀가 그를 만나러 도착했을 땐 노숙인들끼리 자신의 파우치를 가지고 쟁탈전을 벌이며 싸우고 있었고, 다른 노숙인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코피를 흘리면서까지도 자신의 파우치를 지켜준 독고가 고마워 자신의 편의점에 매일 와서 새 도시락을 먹으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독고는 매일 저녁 8시에 와서 굳이 폐기 도시락을 먹었고 마침 야간에 일할 아르바이트생이 필요했던 염여사는 독고와 근로 계약을 맺는다.
2.
주간 아르바이트생이자 취업준비생 시현이 독고의 교육을 맡아 진행하게 된다. 노숙인이라는 사실과 어눌한 말투 때문에 조금 껄끄러웠던 시현은 독고가 JS(=진상)를 멋지게 상대하고, 하루 만에 담배 종류를 전부 암기하고, 이제는 진열대의 라면 종류까지 모두 암기하려는 것을 보고 그를 인정하게 된다. 독고는 시현에게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훌륭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편의점 교육 내용을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려보라고 제안을 한다. 이것 덕분에 시현은 타 편의점을 직접 운영하면서 출장 교육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으며, 염여사의 편의점을 그만두게 된다.
3.
시현이 그만두게 되면서 염여사와 독고 그리고 다른 주간 아르바이트생인 오선숙 여사가 시간을 나눠 Always 편의점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남부럽지 않은 회사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하는 일 없이 집에만 있는 남편과 아들을 보며, 오여사는 편의점 일로 힘겹게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이다. 그녀에게는 매번 변하지 않는 실망만을 주어서 이해할 수 없는 남편, 아들과 달리 독고는 계속 변해서 이해할 수 없는 남자였다. 가출 청소년인 짜몽을 대하는 모습이나, 오전 시간대에 할머니들에게 투 플러스 원, 원 플러스 원 상품을 설명하면서 마트보다 싸다는 것을 홍보해 매출을 올리는 모습들이 신기할 수밖에. 그러던 어느 날, 아들과 싸우고 출근한 그녀는 독고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해준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속마음을 터놓게 된다. 그리고 전혀 그러하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독고로부터 삼각김밥을 매개로 아들과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을 듣게 된다.
4.
경만은 Always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퇴근길에 혼술을 하는 단골손님이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올라갈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그는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으로 죽어라 일하지만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해 대접도 받지 못하는 존재감 없고, 재미없는 마흔 넷 가장이다. 어느 추운 날에 참참참(참깨라면, 참치김밥, 참이슬)을 먹고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까무룩 잠이 들었던 그는, 독고가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면 술 마시는 느낌이 나서 술을 끊을 수 있게 된다며 권유하자, 발끈하며 언성을 높이게 되고 편의점에 발길을 끊게된다. 하지만 집에서는 은따, 회사에서는 대따, 세상에서는 왕따였던 그는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참깨라면이 올려져 있는 것을 보고 오랜만에 참참참을 먹기 위해 편의점에 다시 들른다. 추워서 발길을 끊었을까봐 열풍기까지 구비해둔 독고 덕분에 그곳에서만큼은 VIP가 된 느낌을 받는 경만은 또 옥수수수염차 이야기를 꺼내는 독고 말에 기분이 상해 편의점이 보이지 않는 길로 돌아서 퇴근을 한다. 덕분에 혼술을 멈추고 귀가가 빨라진 그를 아내와 두 딸이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덕분에 기뻐하는 가족을 보며 술을 끊게 된다. 이후 편의점에 옥수수수염차를 사러 간 경만은 쌍둥이 딸이 자신이 힘들게 번 돈을 아껴써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따라 원 플러스 원 제품만 구입한다는 사실을 독고로부터 듣게되고, 두 딸들이 좋아하던 로아커 초콜릿이 다시 원 플러스 원 행사 상품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초콜릿을 구입하며 눈물을 훔친다.
5.
절필을 하기 위해 박경리 토지문화관에 들어간 배우 출신 희곡 작가 인경은 그곳에서 희수라는 한 교수의 제안으로 Always 편의점 맞은 편 빌라에서 잠시 살게 된다. 새벽에 편의점에 들른 그녀는 도시락도 다른 상품도 다양하지 않고 하필 전자레인지까지 고장난 상태인 편의점이 불편한 곳이라며 투덜댄다. 자신을 응대하는 곰 같이 생긴 독고가 보인 작은 호의까지도 따박따박 바른 말을 잘하는 인경에게는 불편함일 뿐이다. 청파동으로 이사와서도 인경의 글은 진전이 없었고, 어느 날 매일 혼술을 하는 남자(=경만)가 독고에게 뭐라 쏘아붙이고 가는 것을 보고 궁금증을 참지 못해 편의점으로 달려간다. 그날 이후로 독고를 관찰하기 시작한 그녀는 새벽마다 산해진미 도시락을 사먹으며 독고와 이야기를 나눈다. 덕분에 작성할 희곡의 플롯을 짠 인경은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제목의 희곡으로 계약을 하게 된다.
6.
인생이 불운의 연속이었다고 믿는 민식은 염여사의 아들이다. 건강한 몸과 말발로 무장한 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번 민식은 서른이 되지도 않은 나이에 자신 명의의 아파트와 외제차를 산 남자다. 하지만 인생이 불운의 연속이었던 그는 전처에게 아파트까지 모두 넘겨주고서 관계를 정리했고, 비트코인의 늪에 빠져 남은 돈마저 탕진한 불운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기용이라는 친구를 만나고 에일맥주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산으로 편의점을 차린 염여사를 찾아간다. Always 편의점에서 국산 맥주는 4캔에 만 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듣고 사업 아이디어를 번뜩이던 민식은 독고와 언쟁을 하다 어머니인 염여사가 몸이 좋지 않아 통원 치료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네 캔에 만 원하는 에일맥주가 반응이 좋지 않아 발주를 그만하라고 말할 거라는 독고의 말에 발끈한 민식은 독고를 조사하기 위해 사람을 고용한다.
7.
곽은 강으로부터 독고의 정체와 구린 과거를 알아보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물론 그 의뢰는 민식이 한 의뢰다. 곽이 독고를 따라다니면서 알게된 사실은 독고가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편의점 도시락을 사다주고 있다는 것과 압구정의 한 성형외과 건물에 갔다는 사실이었다. 성형외과에서 경찰을 사칭하며 원장을 만난 곽은 원장에게 거짓말이 들통나고 독고가 어디에 살고 주로 가는 곳이 어딘지, 혼자 사는지 등을 알라보라는 의뢰를 역으로 받게 된다. 원장의 목표는 독고 사살. 자신의 처지가 안쓰러우면서도 부끄러웠던 곽은 편의점에서 타깃인 독고와 마주한다. 열풍기를 쐬주고 안주까지 챙겨주는 그의 친절함에 자신이 독고를 미행하고 있으며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언질을 해주지만, 걱정말라는 독고는 곧 편의점을 그만둘 예정이었다며 곽이 혼내서 쫓아냈다고 보고하고 보수를 챙기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죽은 사람인데 찾아달라며 곽에게 의뢰를 한다. 그 의뢰를 마지막으로 흥신소 일을 접고 독고의 후임으로 편의점에서 일하겠다고 마음먹는 곽.
8.
Always 편의점에서 일하며 술을 끊은 독고는 점점 과거의 기억을 찾아낸다. 자신이 의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독고는 편의점 일을 그만두게 되고, 신종 전염병인 코로나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대구로 내려간다. 이렇게 이 소설은 막을 내린다.
불편한 편의점인 Always 편의점. Always라는 단어의 뜻처럼 언제나 불편함이 가득한 공간이다.
매출이 나오지 않은 작은 규모의 동네 편의점이라 상품 종류도 다양하지 않고, 일하는 직원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편의점 직원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덩치 크고 말을 더듬는 알콜성 치매에 걸린 노숙인이니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소설 곳곳에는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는 장치들이 많이 있다.
염여사의 딸과 사위, 손녀가 사는 곳은 염여사가 살고 있는 청파동 빌라와 같은 용산구에 위치해있지만, 딸 가족은 동부 이촌동의 주상복합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청파동과 동부 이촌동은 모두 같은 용산구이지만 동네 분위기나 사는 사람들의 소득 수준에서부터 아주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어쩌면 우리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사실이니 말이다.
돈도 힘도 없는 노인들은 발언권이 없는 것이라며, 성공한 노인들이나 일흔이 넘어도 정치나 경영을 하면서 젊은 놈들이 경청해주는 거라고, 그 사람들의 자식들이나 노인에게도 충성하는 거라고 말하며, 뭘 그렇게 대단하다고 떠들어대냐며 입을 다물게끔 마스크를 씌우는 곽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큰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내 현재일까봐, 혹은 내 미래가 될까봐 무서워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일까? 마치 곽이 자신의 친구인 황이 부끄러웠고, 별다를 바 없는 자신도 부끄러웠다고 느끼는 것처럼.
어쩌면 치매기운이 있는 것처럼 잘 잊어버리는 70대의 은퇴한 역사 선생님인 염여사의 등장에서부터 시작한 이 불편함은 그녀의 문제아인 아들 민식, 알콜성 치매가 와버린 서울역 노숙자 독고씨, 공시 준비를 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현, 불 같은 성격으로 힘차게 살아왔지만 이혼을 했고 대기업 퇴사 후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아들을 키우는, 되는게 하나도 없는 오선숙, 내면이 아닌 외부 상황만 보고 방랑소년으로 낙인 찍힌 짜몽, 퇴근 후 편이점에서 먹는 참참참 패키지가 인생의 모든 낙인 경만, 은퇴한 배우이자 제대로 된 글은 한 글자도 쓰지 못 하는 희곡작가 인경, 비리로 불명예 퇴직 후 흥신소를 거쳐 편의점 야간 알바가 된 곽씨 모두를 관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들이 불편한 이유는, 불편함에도 이끌려 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을까?
김호연 작가는 소설 속에서 말한다.
'사는 건 불편한거야' 라고.
또, '사람들 불편해봐야 된다' 라고.
심지어 지금의 코로나 19는 지구가 모두 잘난 척 아는 척 떠들며 마치 중학교 교실인냥 자기 말만 하는 인간들에게 마스크를 씌워 함구하게 하려고 뿌린 역병 같다고.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가는 곳이고,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니듯, 이 불편한 삶을 어떻게는 묵묵히 건너보겠다고 다짐한 독고처럼 우리도 불편함을 안고 묵묵히 살아내고 있는 것이리라 믿는다.
소설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했다고 하는 이 말은 어쩌면 작가가 각자의 인생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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